관매 8경
관매 8경
제1경...해수욕장
두둥실 떠있는 해중에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 고시된 조도6군도 중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인 관매도(면적 38.940k㎢ 북위 34°13' 동경 126°04')가 있다. 배에서 내려 첫 발을 딛으면 동서 2km의 백사장 그 주위를 감싸안은 듯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해수욕장 송림(소나무 숲 3만평)이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토수가 방금 미장이나 한듯 깨끗함이 도를 넘어 극치에 달한 아름다운 모래사장이다. 바닷물을 따라 150m를 들어가도 목물 밖에 깊지 않은 천혜의 관매 해수욕장은 관매 8경의 제 1경이다. 방아 찧던 선녀들이 땀을 씻으며 목욕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는 하늘다리는 이곳 주민들도 7월 백중이면 와서 밥도 지어먹고 폭포수에 목욕을 하는데 그러면 각종 피부병이 씻은 듯 낫는다고 한다.
제2경...남근바위
해안을 따라 잠시 걷노라면 은연중에 발길을 멈추고 눈앞에 작은 섬이 나타나면서 그 산정에 방아(절굿대) 모양의 약 10m 이상이 되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곳이 선녀가 방아 찧던 방아섬(남근바위)이다. 지나가는 여인들은 그 모양이 어찌나 희한한 형태인지 붉어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혼자 웃는 곳이다. 그 옆을 돌아가면 관매 본섬을 하늘에 받쳐 든 양 수많은 기둥바위, 굴바위 혀를 내어 두르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다.
전설: 방아섬 앞에 있는 신전마을 처녀들이 부엌에서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언뜻 고개를 들어 방아섬을 바라보면 큰 파도에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얼굴을 붉히며 가슴에 부지깽이를 들고 숨었다고 한다. 옛부터 이곳 남근바위에는 관매도의 총각과 신전마을의 처녀들이 결혼을 하면 못살고 헤어진다고 하여 결혼을 하지 않는 풍속이 있다. 그 이유는 신전마을에서 남근바위를 보면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음이 양을 당해내지 못하여 불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곳 섬 지방에서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남근바위를 보고 자식을 낳아 달라고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제3경...돌묘와 꽁돌
바닷가로 넓다랗게 널려져 있는 바위가 괴이하기만 하다. 여기가 하늘장사가 묻힌 왕돌끼미인 돌묘와 꽁돌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어라끼미에 내려온 하늘장사가 가지러 온 꽁돌이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것 살짝 얹혀 있는 듯 하다. 꽁돌의 직경은 4-5m정도의 원형이며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사람의 왼손을 펴서 받쳐 든 모양으로 꽁돌 중하단에 움푹 페인 홈이 손바닥의 손금까지도 새겨져 있는 듯 그 형체가 뚜렷하다. 그리고 꽁돌 바로 앞에는 마치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놓은 듯 길이 1m정도의(왕의 묘와 같이 생긴 돌)돌묘가 일품이다. 상단에는 금관모양으로 돌묘를 덮어 씌우고 묘 주위에는 개울처럼 고랑이 패어 있으니 이 어찌 옛 선비들이 일컫는 명당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돌묘 좌우 하단에는 이와 비슷한 묘 형태의 산과 계곡, 호수, 연못, 바위등을 어찌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지 왕돌산 아래 돌묘로 부터 5m거리에 연대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실제의 묘사가 전설속에 잠들어 있다.
제4경...할미중드랭이굴
왕돌끼미 좌편 50-60m해안 절벽하단에 닻을 걷던 닻 걸래 굴이 있고 우측으로 같은 정도의 거리에 선녀들이 꽁돌을 엿보았다는 엿바굴(또는 음성굴)을 지나노라면 깍아 세운 듯한 절벽 아래로 바닷물이 출렁이며 왜 왔던가 싶을 정도의 온몸이 저려오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여기를 지나 서북쪽 방향의 산등성을 넘어 해변에 이르면 비오는 날 밤이면 할미도깨비가 나온다는 할미중드랭이굴이 나온다. 너무 깊고 험상궂게 생긴 굴이다. 햇불을 들고 들어가도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저절로 불이 꺼지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지라 감히 아무도 끝까지 들어간 사람이 없어 그 길이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곳에서 할미도깨비가 나왔다고 해서 할미중드랭이굴이라고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이 굴이 진도군에서 가장 긴 굴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5경...하늘다리
그 폭이 3~4m로 밑으로 돌을 던지면 한참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상당한 높이여서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그위에 감히 서 있을 수 없어 엎드려서 머리만 내밀고 내려다 보면 산이 움직이는 듯 온몸에 찬 기운이 오싹 할 정도이며 그 주변 기암절벽에 감탄을 억제할 수 없는 절경중 절경이다. 이곳에서 그 옛날 방아섬에서 방아 찧던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던 곳이라는 전설을 안고 잇다. 이 하늘다리라는.이름은 이 꼭대기에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갈 수 있게한 이후로 불려진 이름이다.
제6경...서들바굴 폭포
선녀들이 목욕하던 서들바굴 폭포는 안쪽으로 길이 10m 정도되는 서들바굴은 다른 지역 폭포와는 다른 경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방아 찧던 선녀들이 땀을 씻으며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하여 이곳 주민들도 7월 백중이면 이곳에 와 밥도 지어먹고 폭포수에 목욕을 한다. 그러면 각종 피부병이 씻은 듯 낳는다고 하니 허무 맹랑한 전설을 믿고 그 믿음이 또한 병을 낳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이 들면(만조) 바닷물 위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물이 쓸 때면(간조) 자갈 밭 위로 떨어지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요, 폭포수 밑에 섰노라면 어찌나 떨어지는 물길이 아픈지 1분도 채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니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안마"가 아닐까? 서들 바굴 폭포를 지나면 용냉이 굴이다
제7경...다리여
벼락바위 옆에 있는 구렁이 모양의 '다리여' 입니다. '다리여'는 항상 갈 수가 있는 곳은 아닙니다. 바닷물이 많이 빠졌을때, 한 달에 4~5회 정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곳은 자연산 돌미역, 톳, 돌김등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제8경...벼락바위
옛날 관매 백사장 송림사이로 천연기념물인 후박 수림 부근에 당(堂)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매년 마을제를 지내는데, 물론 가장 착실하고 모범적인 미혼청년을 제주(祭主)로 추대하여 당제를 올렸다. 추대된 제주는 당제를 올리기 전이나 올린 후에도 1년 동안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특히 남녀가 만나는 것은 금기로 되어있었던 바 어느 한해에는 이곳 제주로 당제를 지낸 청년이 전부터 몰래 사귀어오던 예쁜 처녀가 있었으나 그 한해 만큼은 만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두 사람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이곳 하늘담 아래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맑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일고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폭우가 쏟아지면서 하늘 담에 벼락을 때려 그만 그 청년과 처녀가 돌 벼락에 맞아 죽었는데 이 벼락바위는 높이는 20-30m 정도이나 밑에서 있노라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섭기만 하며 지금도 번개치는 날이면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아찔한 곳이기도 하다.
출처: 웹 써핑중 고향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8경의 위치
제1경 : (1구 마을, 관매리) 해수욕장 제2경 : (3구 마을, 장산편 지나서 잔너머) 남근바위 제3경 : (2구 마을, 관호리) 돌묘와 꽁돌 제4경 : (2구 마을, 관호리) 할미중드랭이 굴 제5경 : (2구 마을, 관호리) 하늘다리 제6경 : (2구 마을, 관호리) 서둘바 굴 폭포 제7경 : (2구 마을, 관호리) 다리여 제8경 : (2구 마을, 관호리) 벼락바위
*. 위 8경을 모두 보실려면 지금은 숲이 울창하여 산 길로 다닐 수가 없습니다. 관매도에 작은 어선들을 대절하여 이용 하셔야 합니다.
*. 관매도의 부락명은 1구 마을(관매리), 2구 마을(관호리) 3구마을(장삼편), 그리고 남근바위가 있는 잔넘어, 각홀도가 있습니다.
제가 유년시절을 지냈던 1960~70년대에는 위 관매 8경을 모두 도보로 다니면서 구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관매도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많아서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했고, 또 소들이 많아서 소가 풀을 뜯기 때문에 산이 울창하지를 않아서 집에서 1시간 정도 걸으면 7경과 8경등을 볼 수가 있었지요. 그때야 지금처럼 관광 목적이 아니고 삶의 일 부분으로 소 먹이고, 또는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서 였지요.
초등학교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소를 몰고(그 때는 농사일 때문에 거의 모든 집에 소가 있었다.) 산으로 가서 풀을 먹이고 소의 고피를 풀어서 하루종일 온 산을 다니며 풀을 뜯게 한 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단한 식사(그때는 밥 보다는 거의 고구마 정도)를 마친 후 산으로 올라가 소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한것이 소들도 하루종일 풀을 뜯다가 저녁 무렵이면 집이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도 어디쯤 있을거란 생각으로 가면 틀림없이 그 장소에 소가 있었지요. 가끔은 소가 마을분들의 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먹거나 못쓰게 만들어서 혼날때도 있었지만... (물론 동네의 친구 또는 선,후배들과 같이서.....) 소의 위치를 확인 후 친구들과 함께 산에서 들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뛰놀다가 저녁무렵이면 소와 함께 집으로 귀가를 하였지요.....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갈때면 남근바위가 있던 방아섬과 벼락바위등으로 걸어서 다녔습니다. (지금은 해수욕장이 있는 1구 마을에서 2구 마을로 해안도로가 개통이 되었지만, 옛날 구 도로는 농로길이여서 좁고 울퉁불퉁하여 차가 다닐만한 도로도 없었고 차가 한대도 없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