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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 집단 순교지 (태안읍성 내) 2013. 4. 21)

에버그린77 2013. 4. 24. 13:51

아래글에서 해미읍성에 대해 소개를 해드렸는데,

이번 글에서는 천주교 박해 집단 순교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태안읍성 진남문을 들어서면 중앙로 오른편에 큰 회화나무와 옥사가 보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천주교인을 박해했던 옥사가 나옵니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이 옥사를 복원하였으며,

1790년 부터 100여 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다고 합니다.

 

 옥사

해미읍성은 우리나라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재현하였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고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옥사 마당에는 고문할때 쓰였던 형틀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평상시 사극에서 고문 현장을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일행들끼리 형틀에

엎드려 곤장을 쳐 보았는데, 저기 보이는 곤장의 무게에 당시 맞았던 분들의 고통이 어떻했을지

상상을 해 볼 수가 있었다.

 

 당시의 천주교인을 가두어 놓았던 옥사입니다.

 

 

 

 

 

 회화나무

일명 호야나무라고도 불리며, 수령은 3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해미읍성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 가지에 철서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합니다.

 

해미읍성 천주교 순교 기념비

 

 

 

 

 

 

 

 

 

 

해미읍성의 천주교 박해 집단 순교에 대하여

 

해미읍성은 조선 후기천주교인들이 대량으로 처형당한 순교성지이다.

1790년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와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진다.

이때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지방 13개 군현의 군사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지역의 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이곳 해미읍성에서 처형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1,000여명 이상이었다.

이곳으로 끌려온 천주교인들은 회화나무에 철사줄로 매달려 고문을 받았으며,

서문 밖 돌다리 위에 자리개질을 쳐서 죽기도 하였다.

많은 인원을 한줄로 엮어 한꺼번에 생매장시키거나, 물에 빠뜨려 수장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신도들이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장소여서 1965년부터

성지 조성운동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수만명의 성지순례행렬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순교성지이다.

                                                                                                                                      - 출처: 서산시 문화관광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