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매도에 내리자마자 맞닥뜨리는 검은 톳의 행렬. 길바닥에도 모래사장에도 톳, 톳, 톳.
이맘때 빼꼼한 바닥은 다 톳이 차지한다.
#16일 오전 조도행 배_ 죽도·맹골도 할머니들 만나고
배를 놓쳐본 적이 있다. 살면서 놓친 게 배뿐이었을까마는, 바로 눈앞에 손닿을 듯 멀어져가는 배를 속수무책 바라보는 심정은 참으로 허망했다. ‘배 떠난 부두’라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날 수 없었다.
아슬아슬 닿았다. 오전 10시20분 조도 가는 배. 6시20분에 나섰건만 직행버스 타고 나주 영산포 신북 영암 성전 해남읍 우수영 녹진 등등 들러들러 흘러흘러 왔더니 진도 끝자락 팽목항에 닿은 시간이 그렇다.
피서철이 아닌 배 안은 한적하다. 너른 선실에 모두 합해 예닐곱 명 정도.
먼저 오른 할머니 두 분은 한창 이야기중이다. 한 분은 맹골도에, 한 분은 죽도에 사신다 한다. 배가 날마다 있는 건 아니어서 2박3일은 예정하고 떠나야 하는 섬들이다.
“지금은 쪼깐 한가해서 목포 댕겨오는 길이제. 좀 있으문 미역철이여. 그때는 어개버개 바뻐.”
죽도는 텔레비전 드라마 <패션 70S>으로 유명해진 섬이기도 하다. 죽도에 사는 김애진(77) 할머니는 그 때 드라마에도 나왔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민박을 하신다는 할머니는 “담에 (죽도 오면) 우리집에 와서 자”라고 그 틈에 홍보활동도 하신다. 급히 뒤따르는 말은 “근디 우리집은 물짜여.”
“오라면서 물짜라고 하면 누가 가겠어요” 웃음 섞어 물었더니 정색하시고는 “안 오문 마는 것이제. 거짓말하문 쓰가니”라는 대답.
할머니는 서거차도에서 나고자라 죽도로 시집갔다. “열야달에 시집을 갔어. 섬으로 가고 싶었가니. 부모가 가라근께 가는 것이제. 그때는 그런 시상이여.”
섬처녀가 그렇게 섬각시가 됐다가 섬할매가 된 세월. “살다본께 정들었어. 자식들이 목포에 집 얻어준다고 나가살라 해도 나는 싫어. 집에 우두거니 보라꼬 앙겄으문 뭐해. 바다 나가서 내 몸땡이로 자분자분 일허는 것이 좋제.”
▲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 톳 줍는 할매들
▲ ‘널고 몰리고 뒤께고 거두고…’ 하는 일들이 녹록지 않다. “아이고, 뻗치네”라는 말들이 넘쳐
나는 요즘이다
#16일 낮 관매도 도착_ 빼꼼한 바닥만 있으면 다 톳
배는 30분만에 하조도 어류포에 닿는다. 할머니들도 배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다. 내년이면 백살, 나이를 많이 잡순 하조도 등대를 잠깐 둘러보고 다시 12시30분 관매도행 배.
섬에 내리자마자 검은 톳의 행렬이 이어진다. 길바닥에도 모래사장에도 톳, 톳, 톳. 관매도 바다는 옥빛 유난히 곱기로 이름나 있다. 허나 지금 바닷물 옥빛보다 더 넘실거리는 건 검은 빛. 빼꼼한 바닥은 다 톳이 차지했다.
그 자리를 아무렇게나 차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선착장에서 관매마을로 들어가는 길 위에서 톳을 말리고 있던 이남식씨는 “이맘때문 자리가 귀헌께 집집이 면적을 노누제”라고 알려준다. 집마당이며 밭이며 다 동원해도 모자라 공동영역은 분란없게 나눠쓴다고 한다.
톳을 바다에서 베어다 말리는 일은 날씨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장마 닥치기 전에…” 그 시한은 절박하다. “장마 와서 일 못하믄 (톳이) 느질러지고 몰리도 못헌께.” 이맘때 관매도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산다. 볕 보는 게 님 얼굴보다 반갑다.
“비어 와서 널고 몰리고 날 궂으면 걷고 볕 나믄 널고 날마다 그 일이여. 얄븝게 몰리문 하루에도 몰릴 것인디 바닥이 널룹들 않애서 맘대로 펴놓들 못헌께 이틀은 지나야 몰라. 자꼬 뒤께줘야 쓴디 일손이 딸린께 자꼬 뒤께주도 못허고.”
이남식씨는 관매도에서 톳을 제일 많이 한다. 80때 정도. 힘들어도 톳만큼 짱짱한 돈벌이가 따로 없다. “요 톳을 일본사람들이 그라고 좋아한다요.” 말린 톳은 여수 공장으로 보내져 가공을 거친 다음 일본으로 수출된다.
이남식씨 옆에서 일손을 보태고 있는 청년은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셋이 함께 쭈그려 앉아 톳에 섞여든 잡것들을 가려낸다. 어지간히 골라낸 뒤 이남식씨가 모는 경운기를 타고 마을로 들어간다. 경운기는 조그만 턱에도 텅텅 튄다. 엉덩이가 잠시 허공으로 떴다 주저앉으며 급속하게 전해지는 통증. 하지만 인도네시아 청년은 이미 익숙해진 듯 흔들림없는 편안한 표정이다.
#16일 낮 관매마을_ 인도네시아 청년과 한 밥상 앞에
이남식씨 집은 관매초등학교 앞 골목에 있다. 솔밭 너머 밭에서 이 집의 톳일을 거들고 있던 할매들도 낮밥 드시러 왔다. 할매들이 손을 잡아끈다. “밥때 됐는디 어딜 가. 같이 밥 묵어야제”라고. “일한 것도 별로 없이 저도 먹어도 돼요”라는 물음을 무찌르는 할매의 대답. “잉, 돼.” 딱 두 글자에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담는 할매의 내공.
밥상에 둘러앉는다. 식사 준비중이던 이남식씨 아내랑 해서 모두 일곱 명.
잠시 한솥밥 식구가 된 이 구성원들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어제만 하더라도 오늘 내가 관매도 와서 저 멀리 인도네시아에서 온 청년과 관매도 할매들과 한 밥상을 받게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을꼬.
할매들마다 청년에게 한마디씩 하신다. “많썩 묵어.” 헌데 부르는 이름들이 제각각이다. 미수코, 니키, 미시꼬…. 청년 이름은 리스키. 목포에서 조깃배 타는 일을 하다 6월 한달 톳일을 하러 관매도에 들어왔다. 7월이면 다시 조깃배 타러 간다.
무슬림인 리스키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국 대신 리스키 국은 따로다. 두 가지 국에 담긴 존중 혹은 다양성이 이 작은 밥상에 함께 한다.
“미수코, 가지 말고 우리랑 여그서 같이 살자”는 한 할매의 말에 리스키를 제치고 다른 할매가 먼저 대답한다. “아이고 그란해도 요 총각이 날마다 뻗쳐서 죽을라근디 뭔 소리여.”
그 소리에 “맞아맞아” 왁자하니 웃음이 번진다. “그랴, 우리 미스코는 생전 안해보던 일이라 더 뻗칠 것이구만.”
‘뻗친다’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 고단함을 몸으로 함께 겪는 이들의 공감이 그 말에 스민다.
밥 먹고 쉴 새도 없이 또 일하러 나선다. 온 동네 사람들 다 쏟아져 나온 듯 눈길 닿는 곳마다 일하는 모습들이다. 날은 꾸무럭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후두둑 떨어질 것 같다. 비 오기 전에 얼른 톳들을 갈무리해야 한다. 골목 끄트머리에선 할아버지 할머니가 톳을 경운기에 옮겨 싣고 있다. 손 하나라도 보태본다. 둥글게 한 무더기씩 말리던 톳을 모닥모닥 보따리싸듯 해서 경운기에 채곡채곡 쟁인다. 골목길에서 시작된 톳은 집마당에까지 길게 이어진다.
톳을 하지 않는 이들도 손길 바쁘기는 마찬가지. “톳 일이 심들고 애러운 일이요. 나는 혼차 산께 톳을 못 허요”라고 말하는 영현이 엄마(73)는 고추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단속하는 중이다.
영현이 엄마의 고향은 관매도. “나는 여그서 생겨 갖고 여그서 시집가고 여그서 늙으요.”관매도에서의 한생애를 압축하는 말이 그러하다. 그 생애 동안 칠남매를 키우고 열두 손자를 봤다. “여름에 휴가 받으문 우리 아그들이 손지들 데꼬 꼭꼭 오요.” 그것이 젤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란다. “요 고추는 우리 아그들 짐장짐치 담가줄 때 쓸라고 허요.” 자식들 먹일 김장김치 담그는 일은 늙은 어매에게 연중 가장 큰 대사고 가장 큰 보람이다. 그 김장김치 준비를 어머니는 벌써 시작하신 셈이다
#16일 오후 관호마을_ 장사꽁돌 해변의 장대한 풍경
관매마을을 나와 관호마을로 향한다. 선착장에서 왼쪽은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 가는 길이다. 멀지 않다. 걸어서 20분 정도. 1구인 관매마을에 100여 호 정도가 산다면 2구인 관호마을엔 60호 정도가 산다. 그만큼 더 한적한 어촌이다.
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놀러왔어?”라며 “그라문 쩌어 뒤에 장사꽁돌을 꼭 보고 가야제”라고 다짐을 준다. “전하는 이야기가 있제. 하늘사람이 꽁돌 갖고 놀다가 한나를 떨어뜨려 불었다 하더만.” 그 꽁돌 하나가 관호마을 뒤편 바닷가에 있는 것이다.
굽이굽이 펼쳐진 밭들 지나 언덕에 닿는다. 저 너머에 곧 무엇이 펼쳐지리라는 극적 예감을 주는 언덕의 곡선. 그 끝에 서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와락 달려든다. 엄청난 파도소리, 바람소리도 한데 뒤섞여 덮쳐든다.
꽁돌은 감당할 수 없이 큰 그 풍경 속에서 저만치 조그맣다. 한사람이 걸어가면 딱 맞을 산길을 더듬어 해변으로 내려간다. 꽁돌은 더 이상 작지 않다. ‘장사’라는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크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 누군가 부주의하게 덜렁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놓인 자리도 생긴 모양도 각별하다. 마르지 않은 찰흙에 손가락을 꾹 눌러 찍어놓은 것처럼 손의 흔적도 또렷하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 테죽을 꼭 보고 오라”고 당부했을 것.
아무도 없는 파도치는 바닷가에 혼자 섰다. 두렵도록 압도하는 풍경. 경외의 ‘외’(畏)자가 문득 사무친다.
#16일 저물녁 관호마을_ “다아 끝났다글문 쓰겄다”싶은 톳 일
저물녁의 관호마을도 톳 걷어들이느라 분주하기는 마찬가지. “내일은 비 온다등만” “오늘밤에라도 따라질지(쏟아질지) 모르제” 그런 말들이 부산한 손길에 함께 섞인다.
이인이네도 일손이 총출동했다. 부부만 사는 집에 눌옥도에 사는 사촌누님(70), 목포에 사는 큰누님(73)까지 가세했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다시 모으는 것. 이맘 때 관매도에서 그것은 ‘일’이다. 함께 힘 모아 하는 그 일 속에 ‘동숭(동생)아∼’ 부르는 정겨운 호칭도 푸지게 담긴다.
지금은 새참시간. 그물 뭉치에 잠시 허리 기대고 앉아 숨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하는 중간에 이인이 엄마(52)가 솔 묵은김치 양파 넣은 부침개를 서둘러 부쳐 내왔다. “빌 것 넌 것도 없어. 우리는 이라고 묵어. 그래도 일하다 묵은께 맛나.”
지나던 낯선 손에게도 “묵어, 대고대고 묵어”라며 젓가락 쥐어준다. “대고 묵어” “대고 잡솨”, 돌아보건대 1박2일 동안 관매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지나던 낯선 길손 붙잡고 함께 먹자고, 머뭇거림 없이 먹으라고 정겹고도 힘있게 채근하는 말이 그러했다. 강조하려면 “대고대고” 반복하면 된다.
내 평생에 길가던 낯선 사람에게 “밥은 묵었능가” 물으며 그렇게 천연스레 밥상이든 부침개든 차려 내놓고 “대고 잡솨”라고 채근할 일이 있을 것인가.
짧은 새참 시간이 끝나고 눌옥도 할머니가 끄응 일어서면서 노래가락처럼 한마디 늘어 뜨리신다. “다아 끝났다글문 쓰겄다∼.”
하지만 톳 일을 다 마치고 나더라도 끝은 아니다. “줄줄이 일이여.” 톳이 끝나면 미역이 기다린다. “어디든 내다팔문 쫄쫄이 왔냐고 알아주는” 것이 관매도 자연산 미역이란다.
“요새가 젤로 바빠. 자기 묵은 밥그릇도 치우들 못허고 일허러 나가야 되는 때여. 눈 벌어지문 일이제. 새복 서너 시에 인나서 나가문 그때부터 죙일 일이여.”
이인이네는 이번에 톳 농사를 30때 했다. 매야(채취해야) 할 톳이 아직 열서너 때 남았다.
“몇 때 했능가”는 요맘때 동네사람들이 곧잘 나누는 안부인사. 몇 때 남지 않은 사람들은 “오매 좋겄네”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인이 엄마랑 2인1조가 되어 밭 위 모기장에 널어놓은 톳을 빗자락으로 한데 쓸어모아 자루에 담는 일을 한다. 만만하게 여기고 시작했던 일은 쉽지 않다. 모기장이나 그물에 걸려 있는 마른 톳들은 쉽게 쓸어지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손바닥만 해보이던 밭이 쪼그리고 앉아 일하노라니, 그 면적 무한확대된다.
톳에서 왜 이리 향긋한 쑥냄새가 올라 오는가 했더니 모기장 아래가 쑥밭이다. 관매도엔 쑥밭이 많다. 밭에 길러 섣달에도 내고 정월에도 낸다. 2월에 젤로 금 좋을 때는 킬로당 3700원까지 받았던 때도 있었다 한다.
쪼그리고 앉은걸음으로 옮겨가며 허리 펼 새도 없이 일하는 새 바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만 아까 눌옥도 할머니가 했던 “다아 끝났다글문 쓰겄다”는 말이 이 말이었구나,라고 몸이 느낀다.
일 끝내고 함께 먹는 저녁. 이인이 엄마가 묵 같은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칼로 가로 세로 썩썩 썬다. ‘도곳’이란다. “갯가 바우에서 숟가락으로 긁어 캐서 깨깟허니 히쳐내고 솥에 담가서 푹 고문 묵처럼 돼.” 장 치고 들기름 넣고 깨 투두둑 뿌려서 낸다. 몰강몰강 쫄깃쫄깃하면서 갯것 냄새가 왈칵 몰려든다
#16일 밤 김월심 할머니댁_ 대문 앞에 서면 저만치 바다
잠은 김월심 할머니(71) 집에서 잔다. “한자(혼자) 살어. 어른(남편)은 십여 년 전 돌아가셨어.” 혼자 사는 방을 덥혀주는 건 벽에 걸린 손주들 사진. 자식들 전화번호도 큼지막한 종이에 조르라니 적혀 붙어 있다.
할머니는 입맛이 없다며 단술 몇 잔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여덟시반 연속극 <춘자네 경사났네>를 보고 나선 아홉시 뉴스 틀어놓고 시그르르 잠이 드신다. 고단한 하루가 그렇게 저문다.
파자마 바람으로 대문 앞에 나서 본다. 걸을 것도 없이 눈앞에 바다. 집집은 고요하고 골목엔 인적 없고 바람은 세차다. 내일은 정말 비가 올 것 같다.
이제 뭘 할까, 일찍 찾아든 밤이 당혹스럽다. 1박2일 여행을 갈 때도 엽서를 챙겨 넣었던, 그 여행지의 우체국 소인이 찍힌 엽서를 누군가에게 보내리라 설레었던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낯선 곳 낯선 방의 불빛 아래서 베개에 팔꿈치 올려놓고 겨우 몇 줄 쓰던 엽서들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따라서 부쳐지지도 못하고 다시 배낭 속에 넣어져 집으로 함께 돌아오곤 했지.
▲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와락 달려든다. 관호마을 뒤편 바닷가. 엄청난 파도소리, 바람소리
도 한데 뒤섞여 덮쳐든다
#17일 아침 관호마을_ 앞산과 뒷산을 알게 되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옆집 할매들 몇 분이 이른 시간에 마실을 왔다. 재미난 이야기들 하시는가 했더니 어디가 쑤시고 어디가 애리고 저마다 아픈 사연 한자락씩을 펼친다. 그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줄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픔을 잠시 잊는 시간일 게다.
“인나고 앙글 때마다 뚜두둑 분지라지는 소리가 난당께. 밤에 아들이 전화했더만. 어디 아픈 디는 없냐고 물어. 근께 암시랑토 않다고 꺽정말라고 그랬제.”
“오매 그라다 한자(혼자) 죽을라요? 아프문 아프다 그래야제.”
“한자 죽으문 복이제. 아그들 안 성가시고.”
“그라제. 그것이 복(福)죽음이여.”
‘아그들 안 성가시고’라는 말에 모두 동의하며 자리가 파한다. 또 일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 뚜두둑 분지라지는 소리가 나는 삭신으로.
골목을 나선다. 어제 그 많던 톳들은 거의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볕 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마을 뒤로 봉긋봉긋 바위가 솟은 산이 아름답다. 콩밭에서 일하는 할머니에게 산 이름을 물어본다. 돌아온 답은 “뒷산!”
“그럼 저기는 앞산이겠네요”라고 맞은편 산을 가리켰더니 대체나 맞다. “그라제, 앞산!”
명쾌하다. 날마다 그 산들과 더불어 사는 이에게 이름이 무에 필요하리. 이름을 따로 불러주지 않아도 이미 삶 속 깊이 들어와 있는 산.
어제 장사꽁돌을 꼭 보고 가라고 다짐주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다. 박길현(78) 할아버지다.
“내가 아즉 젊었을 직에는 여가 사람들 많이 살았제. 젤 많이 살 때는 110호 정도가 살았어. 집집이 식구수는 많고 묵고 살기 숭측혔제. 그 때는 갱본이 그라고 귀한 대접을 받았어. 가시리 듬북이 톳 미역 같은 묵고살 것들이 다 갱본에서 나온께. 그래서 행랑채도 울타리 둘러서 집으로 맹글고 그랬어. 갱본을 집집이 나눠준께 갱본을 쫌이라도 더 받을라고. 샘(삼)형제가 한집이 살아도 갱본이 따로 나오는 것은 아니여. 식구수 많애도 각자 제금나서 밥을 따로 지어 묵어야만 갱본 몫이 돌아갔제.”
▲ 관호마을 뒤편 해변의 장사꽁돌. 놓인 자리도 생긴 모양도 각별하다. ‘손 테죽’도 또렷하다
#17일 오전 다시 관매마을_ 바람찬 바닷가에 톳 줍는 할매들
관매마을을 다시 찾는다. 마을 뒤에 있는 또 하나의 바다를 보러. 바람은 사정없이 옷 속을 후벼 든다. 오로지 ‘포근함’이 그립고 간절한 그런 날씨.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 사람이 있다. 할매 둘이 파도가 실어다놓은 톳을 줍고 있는 중이다. 바람도 물도 찬데 할매들은 신발이며 바지가랑이를 그냥 무방비로 적시며 톳을 줍고 있다.
관사도가 고향이라는 할매는 젖은 몸뻬를 입고도 “괜찮애, 안 추와”를 연발한다.
“한자(혼자) 아그들 갈치고 여우살이 시킬라고…” 험난한 굽이굽이 헤쳐온 길에, 이만한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배를 타러 선착장 가는 길, 관매도 안내판과 지도를 새삼 들여다본다. 서거차도 관사도 내병도…. 들어올 때 봤던 그 섬이 아니다. 바다 위 점점의 섬들이 아니다. 아, 그 엄니 그 할매 고향으로 다가온다. 그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는 길: 관매도행 배는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 오전 9시30분·낮 12시 두 차례(피서철에는 증편한다). 소요시간은 1시간여. 요금은 7300원. 나오는 배는 오후 1시15분·2시30분. 문의 061-544-5353(진도 팽목매표소). 팽목항에서 30분 거리인 하조도 어류포에 내려 조도(상조도·하조도)를 둘러본 다음 관매도로 들어가는 일정을 짤 수도 있다.
여행쪽지: 민박은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관매마을에서 주로 많이 한다. 솔밭민박(061-544-9807), 동백민박(544-8550), 신관매정(544-8668), 관광민박(544-3827), 소라정민박(544-3926) 등 10여 집.
관매도는 ‘관매8경’으로 이름나 있다. 1경은 관매도해수욕장. 모래가 유난히 곱고 부드러우며 백사장 뒤로는 오래된 솔숲이 울창하다. 2경은 관호마을의 꽁돌과 돌묘, 3경은 할미중드랭이굴, 4경은 방이섬(남근바위), 5경은 하늘다리, 6경은 서들바굴 폭포, 7경은 다리여, 8경은 하늘담이다. 관매초등학교 앞에 있는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12호)도 볼거리.
글. 사진 = 전라도닷컴 남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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