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야유회·행사/단체여행(1박2일)

문경새재/ 백두대간의 주흘산과 조령산 일대의 원시림이 자연그대로 보존 된 청정 휴식공간

에버그린77 2014. 6. 15. 11:41

2014년 6월 14일 (토) 협의회 가족 야유회를 문경으로 다녀왔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할때 잔뜩 찌뿌렸던 날씨가 문경에 도착하니 맑게게어

한낮에는 더위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즐거운 나들이길이였습니다.

문경에 도착-가을 단풍이 절정일때 처럼 수 많은 방문객들과 함께 산책로를 따라

문경새재 제1관문을 지나 백두대간의 주흘산과 조령산 일대의

원시림이 자연그대로 보존 된 청정 휴식공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레일바이크- 석탄박물관-가은오픈세트장을 둘러보고 저녁 늦게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는 문경새재를 소개하겠습니다.

 

 

문경새재 주차장엔 벌써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네요.

 

문경새재 선비의 상입니다.

 

옛길 박물관입니다.

 

 

 

 

 

 

 

문경새재(聞慶鳥嶺)의 유래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 출처:문경시청

 

 

 

 

 

주차장에서 제1관문을 향하여 산책로를 가득매운 수 많은

방문객과 함께 이동을 합니다.

 

 

 

문경새재 제1관문의 모습입니다.

 

 

 

 

 

제1관문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의 모습입니다.

 

 

길가에 지름틀 바우라고 설명글과 함께 큰 바위가 있습니다.

 

 

 

 

 

문경새재 옛 과거길의 모습입니다.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기 위하여 이 험한 산을 넘어다고 합니다.

 

 

 

문경새재 주막의 모습입니다.

위 설명글에서 보시다시피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분들이

피로와 지친몸을 한잔의 술로 여독을 풀고

쉬어가던 주막이라고 합니다.